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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로 사는 건 대체로 편안하고 결정적으로 불편한 일. 맞춤옷을 입은 듯 자유로운 동시에 보이지 않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매일 진을 치는 느낌이다. 퀴어로 사는 일은 싸우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언제든 안전한 곳으로 숨어들 것만 같다. 내가 원하는 옷을 입고 편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속 편한 변명을 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퀴어의 삶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 때문에 말을 아껴왔다. 나의 무지를 감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소한 기억이나 좁은 이해로 일반화하게 될까 두려워서다. 사랑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퀴어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나는 계속 듣기만 했다. 하지만 사랑이 오고, 관계가 깊어지고, 어떤 상대가 내 생활에 들어오자 침묵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신중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게으름 아니었을까? 아무리 보잘것없는 경험이더라도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하고 기억하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애정에 대해 가장 예민할 수 있을 시기를 가장 둔감하게 보낸 듯하다. 고등학교 때는 어느 축제에서 본 다른 학교의 남자애를, 대학교 때는 모임에서 만난 남자애나 선배 등을, 대학원생 때에는 활동하던 단체에서 만난 남자애를 좋아했다. 주변에 테스토르테론이 가장 적어 보이는 남자애들을 골라 좋아하던 시기를 지나, 짝사랑과 포기를 몇 번 더 반복하고서 사랑을 체념하게 되었다. 그게 2017년. 서른이 되던 해였고,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하게 된 해였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고등학교 시절 얼마 동안 어울려 지내던 이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지 신기해하기보다 서로에게 빠지는 그 마음을 궁금해했다. 침대에 같이 누워 있다가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연 바람에 사달이 났었다는 얘기에 가슴이 졸아들면서도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 마음을 궁금해했다. 그때 어울리던 친구 중 하얗고 가로 긴 눈을 가지고 있던 한 친구를 유독 좋아했다. 그 애의 얼굴, 모습,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짧은 머리에, 말끝마다 욕이었던, 장난을 잘 치던 그 애. 어느 날, 그 친구와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도 이 한마디는 또렷이 기억난다. 내가 이반인지 알았다는 말. 나는 그랬냐며 웃고 말았지만 괜히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때까지는 여자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한 적은 없었다.

10대 20대 내내, 내가 어떤 무리에 있으면 좋을지에 신경을 곤두세웠을 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체로 무심했다. 타인에게 아주 작은 호의를 보이면서도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고, 무관심, 나아가 절대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는 신호까지도 부주의하게 내보였다. 대부분은 먼저 손과 얼굴을 내밀지 않음으로써 완벽한 타인을 자처했다. 제스처보다는 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거의 평생을 자기중심인 채로 머물렀다. 그러면서도 나를 환대하고, 가까이 다가오려 노력하고, 내게 먼저 말 걸어주기를 바랐다.
나는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데 서툴렀다. 마음으로는 서로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지만,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20대 초반에 한 남자와의 첫 연애 때 정확히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몇 달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자니 소개팅을 할 때마다 옷차림, 말투, 대화 소재 등에서 사회에서 규정한 여성성을 연기하는 어색한 내가 싫었다. 그러면서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고, 미래에도 혼자일 내 모습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탓했다.
30대 초반, 여자와의 연애에서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먼저 쫓아다녀서 만난 만큼 그 친구와 시간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엔 상대방이 나에게 자신의 일부를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를 자신의 생활에서 지극히 작고 사소한 일부로 생각하는 듯했고, 그건 생각보다 괴로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경험은 나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다가 상상한 적도 없던 친밀감의 세계가 애쓰지 않고도 하나의 단절적인 사건으로 덜컥 왔다. 그때, 연애를 시작하는 것조차 매번 실패하던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가장 뚜렷했던 건 나의 존재였다. 모방하는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 되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관계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도 없고 부족한 나를 좋아하지’라고 신기해하면서도, 일과 작업에 집중이 안 될 때면 애꿎은 연애를 탓하기도 했다. 이러다가 내 시간을, 나를 잃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하지만 애인 역시 자기만의 시간이 줄어든 데 대해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다음에야 애인이 오롯이 안고 있던 공간에 내가 비집고 들어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에 갇혀 바로 앞에 있는 구체적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덜 구체적이고 더 먼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쓸 수 있을까?

토니 모리슨은 한 소설에서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썼다. “사악한 사람은 사랑도 사악하게 하고. 난폭한 사람은 사랑도 난폭하게 하고, 허약한 사람은 사랑도 허약하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사랑도 어리석게” 한다고. 퀴어로서의 내 삶은 꼭 나 같아서, 꼭 그만큼 서투르고 부족하고, 어리고, 이기적이다. 이제야 뒤늦게 노력을 해보려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내가 시도를 한 게 있다면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는 한에서만이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른다. 내 자기는 언제 행복해하고 언제 충만해질까. 말해지지 않은 것도 모르고 말한 것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내 것과 네 것을 따로 두는 버릇이, 내 생각만 하는 것이, 내 생각만 내세우는 것이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적처럼 다가온 사람 덕분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천천히 책임감을 배우고 시간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이해를 연습하고 거리를 생각한다. 기적을 이 땅에 뿌리내리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퀴어의 삶을 사랑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사건 외에는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당신의 사건은 무엇인지, 다양한 이야기를 가능한 한 많이 듣고 퀴어의 삶이라는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더 넓어질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