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불확실한 날의 글쓰기

민지87 2025. 5. 5. 10:43

어느 날, 점심시간에 혼자 산책을 하는데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갑작스러운 변희수 하사의 부고 때문인가 싶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며칠 전부터 회사에서 영 의욕이 없었다는 생각에 살짝 자책하는 기분이 되었다가, 봄이 오고 있어서 그런가 하고 하늘을 보다가, 약을 안 챙겨 먹어서 그런가, 들어가서 약부터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느끼는 답답함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서로 분리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나의 원인을 밝히기 쉽지 않다.

이런 실체가 없는 불안은 익숙하다. ‘경험배움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혼란 속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다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에겐 실패와 회복을 반복하는 능력은 강하고 유능한 사람의 얘기로만 들린다. 인생을 건 결단까진 아니더라도, 작고 무수한 선택을 해왔기에 지금의 나도 있는 거라는 위로를 접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하지만, 종종 그러한 선택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 자신이 없어진다. 그중에 으뜸은 사람, 혹은 다른 존재에 관한 일이다. 갑작스럽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무너지는 순간이 결국 오고야 만다는 걸 생각하면.

친한 선배와 그의 애인이 최근 인천에 작업실을 얻었다. 공사를 하는 중에 우연히 동네 길고양이를 만나 돌보게 됐다. 상호명에서 따와 수분이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이미 두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서 수분이는 작업실에서 같이 살기로 했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족이 된 지 한 달이나 됐을까. 고양이에겐 치명적인 전염병인 범백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입원 외에 어떤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이틀 만에 수분이를 보냈다. 짧은 인연이지만 화장도 하고 그 유해를 단지에 담아 작업실에 고이 둔 사진을 SNS로 보면서, 수분이도 안 됐지만 그 선배 마음이 걱정되었다.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으니 많이 울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소중한 것은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니, 정말 중요한 것만 걱정해야겠다라는 것. 바로 전날만 해도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저울질하면서, 선택의 문제에 골몰하며 잠들었다. 선배의 깨달음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날은 종일 선배의 말을 생각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새 동네에 자리를 만들며 그 동네의 이웃은 물론, 고양이, 강아지들에 신경을 쓰는 두 사람에게 살짝 놀랐다. 둘은 고정된 일자리를 여러 번 그만두고 이 일, 저 일을 하면서 어렵게 작업 활동을 해왔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도 일을 도운 나에게 적은 수입의 일부를 꼬박꼬박 정산해주었고, 타로 점을 잘 보는 선배의 애인은 복채를 주겠다고 해도 나에게만은 그럴 수 없다면서 무료로 여러 번 상담해주었다. 사실 평소 이들의 고집스러움이 조금 답답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견뎌야 한다며, 그런 나를 슬쩍 우위에 두면서 말이다. 불확실한 삶을 이렇다 할 무기도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살리는 일을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알량한 재주로 다른 이에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주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나 역시 가진 것과 못 가진 것,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비교하면서, 나의 안녕만을 염려하면서 그렇게 중요한 것들에 눈을 감고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인생의 어느 시기마다 변화는 있겠지만, 시시때때로 바뀌는 것을 두고 정말 중요한 것이라 말하진 않을 것이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내 중심을 잡아주는 그 무엇. 아직 내게 그 중심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일상의 작은 선택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가 않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를 들여다보고, 애써 선택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글쓰기가 그 과정을 돕는 선생이 되기를 바란다.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 모호한 영역으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도록.

 

(2021년 3월 모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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